제목 | 그림 창문 거울, 미술 전시장의 사진들 |
저자 | 윤원화 |
출판사 | VOSTOK |
. p6
(전략)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있는데도 그 모든 것이 다소 부차적인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도 나는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지의 현 상황에 대한 그런 의구심이 내가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일에 점점 더 많은 일을 할애하도록 요구해 왔다. 여전히 나는 그 희미한 느낌을 쫓아 전시장을 돌아다닌다. 그 흐릿한 것의 꼬리를 텍스트의 밧줄로 조심조심 잡아당기면, 내가 한 번도 제대로 전체를 본 적 없는 어떤 거대한 것의 몸체가 드러나리라는 막연하지만 끈질긴 예감이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 정의할 수 없는 대상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은 학술 논문이 아닌 글쓰기의 몇 안 되는 장점이다.
. p18
(전략)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것을 아주 틀린 접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장기적인 접근이거나, 또는 더 정확히 말해서 역사를 공간화하는 접근이다. 말하자면 그림의 역사라는 큰 그릇 속에서는 온갖 일들이 벌어질 수 있지만, 이 그릇 자체는 시간의 바깥에 있어서 내부의 변화에 영향받지 않고 불변한다. 수많은 그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미술 또한 시대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림'은 영원하다. 그것은 세계를 시각적으로 대하는 인간 보편의 속성이 표현된 것으로서 우리 자신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보증하고, 변덕스러운 시간을 벗어나 잠시 안식할 수 있는 정신적 피난처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그림의 역사』 가 보여주는 역사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이상적인 회화를 지향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호크니는 사진뿐만 아니라 회화 또한 미술이라는 특별한 범주에 가두지 않고 그냥 그림으로 취급하지만, 그럼에도 간혹 '그림'이라는 일반적 범주를 넘어서는 회화의 존재에 관해 언급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때 사진은 회화의 대립항으로서, 마찬가지로 '그림'과는 조금 다른 층위에서 접근된다.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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